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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의 공존 모준석 작가
2018-03-23

 

벽이 허물어진 집을 동선과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하는 모준석 작가. 벽이 허물어져 만들어진 하나의 공간을 통해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너)와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 질문한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글 | 양은영 기자글 | 양은영 기자

 

모준석 작가
1984년생, 국민대학교 입체미술전공 학사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으며 2017년 프랑스 PARIS HORIZON 갤러리에서 떨림(Palpitations)을 주제로 개인전을 가진바 있다.

 

INTERVIEW

 

Q. 미술을 처음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조각가이신 최정유 미술선생님께서 첫 수업으로 자신의 인생을 그려보라는 주제를 주셨어요. 고등학교 공부는 보통 이미 정리된 이론이나 공식들을 암기해야 하는 것인데, 미술은 저의 생각을 표현 할 수 있어서 새롭고 좋았어요. 하루는 제 발포 석고 조각 과제를 선생님께서 보시고는 미술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저는 그 당시 인문계고 이과였기 때문에 미술은 상상을 못했죠. 고민하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미대입시를 준비했어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죠.(웃음)

 

Q. 막상 입학하고 나서는 어땠나요?
입학하고 이 년 동안은 미술에 푹 빠져서 신나게 보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창작’이라는 단어가 저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죠.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벽에 부딪치기도 했어요. 도움을 많이 받았던 수업은 이웅배 교수님의 금속조각 수업이었어요. 작품을 완성하는 것보다 철저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작품 제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죠. 교수님께서는 제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질문을 던지셨어요. 어려웠던 수업이었지만 이 시간을 통해 작품이 우리의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면, 생각의 깊이만큼 작품의 깊이가 생기기 때문에 생각은 작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체득했어요. 3, 4학년 때는 주로‘너(타자, 他者)’에 대해 표현하는 주제를 많이 다뤘어요. 예컨대, 다른 이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지로 캐스팅한 손을 연결하여 날개 형태로 된, 사람들이 착용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나에게서 그치지 않고 너에게 다가가는 방법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제가 작업을 대하는 태도였어요.

 

Q. 전체적인 작품을 보면 ‘집’모양들이 서로 이어져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네요.
저는 ‘집’을 사람으로 은유하여 표현해요. 벽이 허물어진 집의 형태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내부의 하나의 큰 공간. 즉,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물러설 때에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이사가 잦았던 기억은 제게 ‘집’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만들어 주었어요. 사전적인 정의의 집은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것인 반면, 바로 옆집으로 이사가기도 했던 제게는 집이 열려있는 공간으로 다가왔어요. 그 후에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때에도 매 학기와 방학마다 다른 방으로 이사를 다니고 새로운 친구들과 생활을 했어요. 군대에서도 한 내무실을 스무명이 나눠서 사용했고요. 이 시간들은 구획을 나누지 않고 함께 존재함 이라는 강한 기억을 만들어 줬어요. 물론 함께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서로 다른 성향 때문에 부딪치기도 했고 나와 완벽히 다른 사람들과 만남의 연속이었어요. 비트겐슈타인은 ‘너(타자)’는 나와 삶의 규칙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고 했어요. 나와 삶의 규칙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을 하게 되었죠.

 

Q. 재료로 동선과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쾰른대성당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게 되었어요. 그 때 느꼈던 힘과 감동의 여운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시지 않았죠. 졸업전시를 준비하던 때 새벽에 집을 나서는데 성북동 언덕 불빛들이 아련히 보였어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불빛들을 볼 때, 쾰른에서 봤던 스테인드글라스가 떠올랐죠. 저는 종교적인 이유보다 다양한 색의 표현과 조화, 혹은 낯섦을 연구하기 위해 선택했어요.
대학교 수업을 통해서는 금속을 사용할 기회가 많이 있었어요. 보통 철이나 스테인드스틸을 사용하는데 우연히 ‘동’이라는 재료를 알게 되었죠. 동은 스테인드스틸보다 강도가 약해서 변형이 쉽고, 철과 다르게 표면 마감이 손쉽다는 점이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하게 표면색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Q.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요.
아이디어 스케치로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선택된 아이디어 스케치를 흙 모형으로 만들어요. 완성된 흙 마케트¹를 보면서 용접을 통해 동선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데 보통 흙 작업의 3, 4배로 확대 제작해요. 작품이 다 완성되면 드로잉과 마케트, 완성된 작품이 서로 다르다는 느낌을 받아요. 흙은 한 덩어리로 만들어져 있어서 닫히고 막혀있는데 동선으로 옮기는 작업을 통해서 열리고, 내부가 비워지는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거죠.
선 형태가 완성이 되면 그 작품을 보며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상을 정해요. 저는 형태가 주는 색이 있다고 생각해서 형태와 색상이 조화를 이루는지 고민하죠. 최근에는 색상이 형태를 읽어내는데 방해를 하는 것 같아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빼고 해요.
완성된 작품에 이름을 짓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람들이 작품을 본 이후에 이름을 통해서 작품과 대화를 하기 때문이죠.

 

Q. 현재는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어요. 아내는 외국에서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어 했고 그녀의 탐구의지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어요. “타자는 나의 미래다.”라고 말한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말을 떠올리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파리의 첫 생활은 정말 깜깜했지만 일 년 동안 언어를 배우고 행정을 처리하며 보냈어요. 이 년 차가 되면서 아이디어 스케치를 시작하였고, 제가 표현할 주제들을 다시금 정리했어요.

 

Q. 작년에는 프랑스에서 ‘떨림(Palpitations)’을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파리에서 작업한 조각 작품 9개와 한국에서 온 작품 1개 그리고 드로잉을 전시했어요. 전시 제목 ‘떨림 Palpitations’ 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어요. 흔들림, 요동 같은 물리적인 떨림과 설레임, 감동 같은 감정적인 떨림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에요.
파리에 와서 제대로 된 소통이 되지 않을 때에도 불어 대화 상대를 자청하신 자닌할머니, 떼제 공동체에서 만난 에드윈, 먼저 말을 건네준 디모데 부부 등 언어를 넘어서는 만남에 대한 떨림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2016년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고민과 분노의 결과로서 바로 세우기 위해 이전의 것을 무너뜨리고 허물어뜨리는 과정을 지나야 한다는 것, 무너짐 앞에 선 두려운 떨림 그리고 새로움을 향한 떨림의 의미도 있고요.
마지막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에요. 파리에 도착한 후, 개인전은커녕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개인전의 기회를 얻었거든요. 3년 만에 전시로 사람들을 만나고 저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저를 참 설레고 떨리게 한 의미를 담았어요.

 

Q. 현재는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어요. 아내는 외국에서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어 했고 그녀의 탐구의지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어요. “타자는 나의 미래다.”라고 말한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말을 떠올리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파리의 첫 생활은 정말 깜깜했지만 일 년 동안 언어를 배우고 행정을 처리하며 보냈어요. 이 년 차가 되면서 아이디어 스케치를 시작하였고, 제가 표현할 주제들을 다시금 정리했어요.

 

 

Q. 작년에는 프랑스에서 ‘떨림(Palpitations)’을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파리에서 작업한 조각 작품 9개와 한국에서 온 작품 1개 그리고 드로잉을 전시했어요. 전시 제목 ‘떨림 Palpitations’ 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어요. 흔들림, 요동 같은 물리적인 떨림과 설레임, 감동 같은 감정적인 떨림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에요.
파리에 와서 제대로 된 소통이 되지 않을 때에도 불어 대화 상대를 자청하신 자닌할머니, 떼제 공동체에서 만난 에드윈, 먼저 말을 건네준 디모데 부부 등 언어를 넘어서는 만남에 대한 떨림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2016년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고민과 분노의 결과로서 바로 세우기 위해 이전의 것을 무너뜨리고 허물어뜨리는 과정을 지나야 한다는 것, 무너짐 앞에 선 두려운 떨림 그리고 새로움을 향한 떨림의 의미도 있고요.
마지막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에요. 파리에 도착한 후, 개인전은커녕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개인전의 기회를 얻었거든요. 3년 만에 전시로 사람들을 만나고 저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저를 참 설레고 떨리게 한 의미를 담았어요.

 

Q. 취업과 성과위주의 사회분위기에도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취업이라는 기준은 우리를 더욱 작아지게 하고 미술이라는 영역이 점점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다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예술과 예술가는 필요해요. “이 시대에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나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이 부분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아갈 수 있다면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예술가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거예요. 저 역시도 매일 새로운 질문들을 안고 고민하고 있답니다.
보이는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인내하고 자신의 삶을 작품과 같이 만들어나갈 때 이미 그 사람은 예술가라 생각해요. 우리는 자주 무언가에게 평가를 받지만 실상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이에요. 여러분의 땀과 수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응원해요.

 

Q.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지금은 팡테옹소르본 파리 1대학 조형예술학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다시 작업실을 얻는 날을 기대하며 아이디어 스케치와 드로잉을 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생각을 발전시키고 주제를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시대정신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계속하여 진행하는 것이 제 계획이고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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